| 미학과 정치운동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
만일 우리가 지난 200년 이상 전개되었던 "아방가르드"를 간략히 정의하려고 한다면, 이는 사회에서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발전들을 변형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할 것이다. 때로는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함께 얽혀있고 또 어떤 때는 분리되어 심지어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지기도 하며 미학적 혁신과 정치적 개입이 함께 아방가르드가 지닌 의미의 핵심에 파묻혀 있다. 앞으로 나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아방가르드의 기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발전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내 생각에는 아방가르드 내에서의 정치학과 미학 사이의 긴장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정치운동가들은 미학적 운동의 충격으로부터 매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1. 형식에 몰입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것이 예술운동과 관련하여 처음 사용되었을 때 명백히 드러난다. 즉 "현대" 이전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 여겨졌는데, 이는 소비주의와 대량 살상무기들이 아름다운 것들의 토대를 파괴시키고 사회의 존재를 위협할 때 단순히 미학적 가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분명한 모순에 대한 해결은 예술의 형식적 미학의 범위 내에서 진실은 사회를 변형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르쿠제에게,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써의 언어와 이미지로써만 예술의 급진적인 잠재력을 표현한다. 예술의 해방적인 메시지는 절대 오지 않을 새 천년까지 지속할 것이다. 예술은 소외된 상태로 남아야 한다. 예술은 혁명을 나타낼 수 없으며 예술 자체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지배되어 정치적 내용이 메타정치적(정치철학적)으로 되는 미학적인 형식 안에서만 혁명을 불러낼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이 정치적 투쟁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상상력이 총체적으로 기능하는 것, 즉 도구주의적 이성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방가르드의 어원 1825년에 프랑스에서는 생시몽(1760-1825)이 자신의 저서 {문학적인, 철학적인 그리고 산업적인 의견들 |